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최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25% 상승했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이 흐름이 한 달, 두 달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Asil)에 따르면 최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 937채로, 연초 대비 9.3% 줄었다. 경기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1만 7745채에서 1만 2344채로 무려 30.4%나 감소했다.
물건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건 시장의 섭리다. 문제는 최근에는 가격 상승 요인이 하나 더 붙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집을 오래 보유하기만 해도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개편안은 ‘실제 거주’에 무게를 둔다. 1주택자가 직접 살면 최대 80%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신, 임대를 주고 있는 집주인은 혜택이 줄어든다. 시장에서는 일부 집주인이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세입자에게 계약 만료 후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새 세제가 전세·월세 세입자에게 ‘퇴거 압박’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흐름도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결과, 최근 서울 아파트·오피스텔의 ‘전세→월세 전환율’은 평균 6.06%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 보증금을 묶어 두는 것보다 월세로 전환해 현금 흐름을 만드는 게 유리해졌다는 뜻이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매달 나가는 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실제 가격대를 보면 체감은 더 확실하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최근 서울 84㎡(국민평형) 아파트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7억 3342만 원이었다. 1년 전 6억 8390만 원과 비교하면 7.2% 뛴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초구가 11억 7714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강남구 9억 5899만 원, 송파구 9억 4763만 원, 종로구 9억 1169만 원 순이었다. 외곽 지역의 상승률이 더 무섭다. 강북구는 1년 새 20.5% 올라 5억 1259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냐 월세냐’는 단순한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다. 보유한 현금, 거주 기간, 직장까지의 거리까지 모두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결정이 됐다.
내 상황엔 전세와 월세 중 어떤 게 맞을까
전세와 월세를 비교할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건 ‘내가 이 집에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다. 2년 이상 거주할 계획이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전세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매달 월세를 내지 않으니 고정 지출이 줄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반대로 1년 미만으로 살거나 자금 여력이 부족하다면 월세가 현실적인 선택이다.
| 구분 | 전세 | 월세 | 반전세 |
|---|
| 비용 구조 | 보증금 5억~12억 원 (서울 84㎡ 기준, 지역별 편차 큼) | 보증금 + 매월 임대료 (지역과 평형에 따라 크게 달라짐) | 보증금 + 소액 월세 |
| 이상적인 상황 | 2년 이상 거주, 목돈 보유, 고정 지출 줄이기 원함 | 단기 거주, 자금 유연성 중시, 월 수입 안정적 | 전세 목돈은 부족하지만 월세 부담은 줄이고 싶을 때 |
| 장점 | 월세 없이 거주 가능, 보증금 전액 환급 | 초기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음, 이사 자유로움 | 전세보다 초기 부담 낮고 월세보다 매달 부담 적음 |
| 유의점 | 보증금 마련 부담, 전세사기 위험 관리 필요 | 월세 인상 부담, 잦은 이사 가능성 | 계약 조건에 따라 실익 차이 큼 |
30대 직장인 김민준 씨(가명)는 강남으로 이직하면서 전세를 알아봤다. 하지만 보증금이 9억 원을 넘는 매물이 대부분이었고, 대출 이자를 계산해 보니 월세 부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마포구에서 반전세를 선택했다. 보증금 3억 원에 월 60만 원 안팎의 조건이었는데, 전세를 고집했다면 월 250만 원가량의 이자를 감당해야 했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리해서 전세를 끼고 들어갔다면 2년 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도 컸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전세를 선택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이지은 씨(가명)는 성북구에 4억 5000만 원 보증금의 전세로 들어갔다. 5년 이상 거주할 계획이었고, 월세로 살았더라면 매달 120만 원가량을 냈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보증금을 묶어 두는 대신 매달 현금 흐름을 지킨 셈이다. 다만 그녀는 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두 번이나 확인했고, 법무사 상담도 받았다. 전세사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전세와 월세 중 어느 쪽이든 피해야 할 실수는 비슷하다. 첫째, 보증금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매물을 고르지 말 것. 둘째, 중개업소가 안내하는 조건을 그대로 믿지 말고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직접 확인할 것. 셋째, 구두 약속은 계약서 특약에 반드시 명시할 것. 넷째, 입주할 때 모든 벽면과 가구, 바닥 상태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둘 것. 퇴거할 때 원래 있던 흠집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임대아파트 계약 전 반드시 확인할 것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지금부터 설명하는 네 가지를 확인하면 대부분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
등기부등본 열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근저당권 설정 여부, 가압류나 경매 진행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보증금이 나중에 돌아오지 않을 위험이 가장 큰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부동산원의 ‘전세가격 정보’와 ‘보증금 사고 예방’ 서비스를 활용하면 지역별 시세와 위험 매물 정보를 비교할 수 있다.
계약 갱신 조건을 미리 확인하자. 임대차 2법에 따라 2년 계약 후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갱신 시 임대료 인상은 5%를 넘을 수 없다. 다만 최근 세제 개편 이후 집주인이 ‘직접 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약할 때부터 ‘갱신 거절 사유’를 계약서에 명시해 두는 게 안전하다.
입주 상태 기록은 증거가 된다. 벽지의 얼룩, 싱크대의 긁힘, 문짝의 흔적까지 전부 사진으로 남긴다. 날짜가 표시되는 앱을 쓰면 더 좋다. 퇴거할 때 원상복구 비용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이 기록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
지역 자원을 활용하자. 서울 각 구청에는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가 있다. 계약서 조항이 이해되지 않으면 중개업소에 물어보기 전에 구청 상담을 먼저 받는 게 낫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에서 정식 등록된 중개업소인지 조회하는 방법도 있다. 무자격 중개업소를 통한 계약은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보상받기 어렵다.
지금처럼 시장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남들 다 하니까’라는 이유로 전세를 고르거나, ‘월세가 싸니까’라는 이유만으로 계약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다음 주말,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 두 곳만 방문해 보라. 전세와 월세 매물을 직접 비교하고, 중개인에게 최근 시세 흐름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불안은 상당 부분 줄어든다. 계약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